카페이야기/베트남 호치민

Gạch café 불규칙한 평온함, 정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나를 마주하다

jejakso 2025. 3. 17. 17:37

호찌민시 푸년(Phú Nhuận) 지역의 골목을 걷다 보면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한 카페가 보인다. 이름은 Gạch Cafe. 숙소 바로 앞에 있지만, 그동안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고, 항상 자리가 꽉 차 있는 모습에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그런데 오늘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안으로 들어와 보았다.

호치민 Gạch café의 입구
Gạch café의 입구

카페입구는 오토바이들로 가득 주차되어있다. 이것이 여기가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를 알려주는 바로미터다. 이것은 현지인이 많이 찾는 카페란 증거다. 입구에는 한결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은 나무가 눈에 띄었다. 제법 큰, 나무 한 그루인지 여러 그루인지 헛갈리는 나무가 이 공간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 이 나무 덕분인지 공간이 묘하게 평화롭다. 평온함이라는 것은 완벽한 정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곳에서 다시금 깨닫는다. 어수선하게 놓인 의자들과 여기저기 제멋대로 배치된 테이블, 깔끔함과는 거리가 먼 인테리어지만, 이상하게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호치민 Gạch café의 주차해 있는 오토바이들
Gạch café의 입구에 오토바이가 가득 하다.

자리는 다양하다. 혼자 앉아 책을 읽기에 좋은 작은 테이블도 있고, 친구들과 둘러앉아 수다를 떨기 좋은 널찍한 자리도 있다. ‘rolling roof’ 시스템이 있는 ㄷ자 중정을 바라보는 바 테이블이 있어 중정을 내다보며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호치민 Gạch café의 천장 개폐장치
Gạch café의 ‘rolling roof’ 시스템

중정이라고는 하지만 ㅁ자 테이블이 있어서 앉을 수 있는 좌석으로 배치 되어 있다. 서로 다른 재질과 모양을 가진 테이블들이 한 공간에 섞여 있지만, 그 조화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그 불규칙함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지금 내 상태가 평화로운 것일까. 아니면 이 공간이 주는 안정감 덕분에 내가 평온함을 느끼는 것일까.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는 자유로움이 나에게 평화를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이곳에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부담도 없이 그저 이 공간에 몸을 맡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호치민 Gạch café의 ㅁ자 중정 테이블
Gạch café의 ㅁ자 중정 테이블

정리가 잘 된 세련된 카페들처럼 매끈하고 깔끔한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따뜻함이 있다. 마치 오랫동안 사람이 머물며 살아온 공간처럼, 자연스럽게 쌓여 온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호치민 Gạch café의 중정이 보이는 바자리
Gạch café의 중정이 보이는 바자리

 

호치민 Gạch café의 빈티지한 소품
Gạch café의 빈티지한 소품
호치민 Gạch café의 그래피티
Gạch café의 그래피티

정리되지 않은 듯하지만, 그 속에서 나름의 질서가 보인다. 이곳은 세월이 보이는 공간이다. 새것보다 오래된 것이 많고, 반듯한 선보다는 흐트러진 선이 많다.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은 흔적들이 쌓여 가면서, 그 자체로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묘하게 따뜻하고, 묘하게 안정적이다.

호치민 Gạch café의 브랜드 로고
Gạch café의 블핸드 로고

오늘따라 유난히 시끌벅적한 소음조차도 편안하게 느껴진다. 조용한 카페를 찾아 일부러 한적한 곳을 골랐던 날들도 있었지만, 오늘은 이런 북적임도 괜찮다. 사람들의 목소리, 이동하는 소리, 컵이 부딪히는 소리들이 오히려 공간을 가득 채워 주는 느낌이다. 이런 어수선함 속에서도 평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 Gạch Cafe는 정돈되지 않은 채로 하나의 공간을 이루고 있다. 나도 지금, 내 삶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계획되지 않은 하루, 명확하지 않은 미래, 그리고 미처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조차도 지금의 나를 이루는 요소들이다. 그 모든 것이 섞여 있지만, 그 자체로 괜찮다고 느껴진다.

호치민 Gạch café의 안정감 있는 안쪽 자리
Gạch café의 안쪽 자리

이곳에서의 시간은 흘러가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불규칙함이 주는 안정감, 어수선함이 주는 평온함. 그것이 바로 이 공간이 가진 매력이 아닐까. Gạch Cafe를 나서며, 앞으로는 지나치기만 했던 것들에 한 번 더 눈길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평화를 만날 수 있으니까.

https://maps.app.goo.gl/krVnfH1GqJqm4CRu9

 

Gạch cafe · 37 Hoa Cúc, Phường 7, Phú Nhuận, Hồ Chí Minh, 베트남

★★★★☆ ·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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